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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보다 더

울산조선소를 구상하던 정주영, "쇠가 물에 뜨느냐?"

정주영 회장과 그리스 선박왕 조지 리바노스의 일화
현대중공업의 정주영 회장, 그리스 선 엔터프라이즈(SUN Enterprise)사의 조지 리바노스(George S. Livanos) 회장

 대한민국은 세계 선두를 달리는 '조선 왕국'이다. 그런대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신화'가 두 사람의 '비이성적인 판단(사실은 초이성적인 판단)'에서 물꼬를 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사람은 아산 정주영 회장이고, 또 한 사람은 그리스 선박왕 조지 리바노스였다.

 정주영 회장이 처음 울산조선소를 구상하면서 엔지니어를 만나 물어본 말이 "쇠가 물에 뜨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어찌됐든 조선소를 짓고야 말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한국이 세계 최초로 만든 철갑선이라며)를 들고 국제무대에 돈을 빌리러 나섰다. 국내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빌려줄 능력을 가진 은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국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리가 없었다. 영국 바클레이 은행을 찾아간 정주영 회장은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계약서를 가져오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조선소도 없는데 배부터 팔아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이번에는 선주들을 만나러 다녔다. "배를 사주겠다고 계약을 해주면 그 계약서로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지은 뒤 배를 만들어 넘겨주겠다"는 식이었다. 선주들 입장에서는 사기꾼으로 오해할 만했다. 정주영 회장이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보여준 것은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허허벌판 사진과, 유조선 도면이 전부였다. 물론 도면은 영국의 조선소에서 빌린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 선박왕 조지 리바노스가 오케이를 했다. 유조선 두 척을 발주해줄 테니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지으라는 것이었다. 리바노스가 정주영 회장을 선택한 이유가 재미있다.



 "만나서 이야기해보니까 믿을 만한 사람 같았다. 그것뿐이다."


 1972년, 리바노스는 계약서에 서명했고, 울산에 현대의 조선소가 첫 삽을 떴다. 조선 산업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했다.
 리바노스는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이후에도 총 아홉 척을 현대중공업에 발주했고 명명식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참석해 우의를 이어왔다.


 리바노스를 설득한 것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도, 울산 미포만의 허허벌판 사진도, 영국에서 빌려온 유조선 도면도 아니었다. '이 사람은 어쩐지 믿을 수 있겠다'는 예민한 느낌이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조선 사업은, 첫 고객이 누구이며 어느 정도 규모의 배를 발주했느냐가 향후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와 영업 등에 지속적인 '후광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리바노스가 정주영 회장을 선택한 것은 현대에게 최고의 행운이었다. 리바노스 스스로도 해운왕이지만, 또한 그는 세계적인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다.

 물론, 행운의 출발점에는 정주영 회장의 '선택'이 있었다. 그는 '쇠가 물에 뜨는지'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한상복, 연준혁, 보이지 않는 차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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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연준혁 지음/위즈덤하우스